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북 사건 (문단 편집) === 가중되는 일본의 압력 === 분명 국민정부는 손영근의 부대를 일절 돕지 않고 일본군에게 협조했지만 일본군은 느닷없이 준화현장 하효이가 손영근을 도와주었다고 주장하며 격렬히 항의, 5월 20일 주중 일본 대사관 무관 타카하시 탄(高橋坦) 소좌는 [[허잉친]]에게 관동군의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 1. 이번에 준화현장 등은 확실히 손영근 도적 집단을 비호한 사실이 있다. 과거 국경 부근의 중국 관리도 열하 지역의 질서를 어지럽히던 도적 집단을 비호한 적이 있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관동군은 그 책임을 추궁하는 바이다. * 2. 관동군은 수개월 동안 비록 열하 지역을 어지럽히는 손영근 도적 집단을 제거하였지만 그러나 중국 관 측의 비호 때문에 걸핏하면 중국 영토 내로 도망가 숨어버려 소멸시킬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준화 일대로 들어가 철저한 소멸을 기도한 것이다. 5월 21일, 화북 주둔군 고급참모 이시이(石井), 화북 주둔군 헌병대장 이케가미(池上) 등이 하북성 정부주석 우학충과 톈진 시장 장연악에게 면회를 신청하여 우학충에게 "네가 암살범이다!", "바보 자식!"이라고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장정악이 원흉이고 우학충은 그 하수인이요 추종자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관동군 참모장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일본무관 가게사 사다아키는 국민정부에게 장정악과 우학충을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계속된 위협에 톈진 시당부의 위원이 전부 결석하고 장정악은 피신하였고 우학충도 경계를 강화하였다. 결국 우학충은 5월 25일에 7월 1일부터 하북성 정부를 바오딩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고 자신도 6월 3일, 바오딩으로 이동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